Wednesday, March 23, 2005

Bicycle Man




자전거형 인간에 대해


사람을 규정하는 데에는 다양한 인간유형이 있을 수 있다.어떤 사람들은 사람을 혈액형으로 구분하고, 어떤 사람들은 성별로, 또 어떤 사람들은 종교와 인종, 심지어는 외모로 호감/비호감 형을 나눈다. 이것은 사회구성원인 사람을 이해하기 편하게 하기 위해 임의로 설정해 놓은 것으로,최근 사이쇼 히로시가 '아침형 인간'이라는 새로운 인간상을 만들어 내기 전까지 그런 인간형이 존재하지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대체 나는 어떤 사람인가, 라는 것에 대해 골몰해 보다가나는 '자전거형 인간'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내가 생각하는 자전거형인간 - 훨씬 더 빠르고 편리한 다른 이동수단을 거부하고 자전거로 돌아다니는 인간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Forest Gump 적사고

내가 자전거 타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봤다. 결론부터 말하면 별로 생각하는 게 없다. 자전거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나의 장래라던 지, 우리 나라의 외교문제, 경제 상황 같은 무거운 주제에 대해 자전거 안장에 앉아 오랜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안장 위에 오르면 이런 생각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억지로 이런 생각을 떠올리려고 해도 금방 “그런데 오늘은 뭘 먹지?” 같은 좀더 본질적인 문제가 머릿속에 밀어 닥친다. 아마 자전거가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여행이기에 두뇌 에너지 소비량을 줄이려고 본능적으로 쉽고 편한 생각만 하게 되나보다.

자전거 여행은 분명 힘들다. 솔직히 말하면,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몸도 건강해야 하고, 여행의 가장 위험한 순간인, “내가 왜 이런 곳에 와서 바보같이 자전거나 타고 있지?” 라는 의문이 들었을 때는 재빨리 생각의 주제를 삶의 의미라든지, 재미있는 영화, 혹은 이효리 등으로 바꾸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내 페달질을 멈추고 버스로 갈아타게 된다.

2. 간디 만큼의 욕심

자전거 여행을 위한 준비물은 끝이 없다. 우리나라를 일주할 때는 조그만 배낭 두 개로도 끄떡없었다. 하지만 여행이 지날수록 나의 욕심은 커져 간다. 더군다나 시행착오를 통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더 잘 알게 된다. 그리고 가져올 수 없는 것을 지속적으로 떠올린다. 냉장고, TV, 전자레인지가 이런 불가능한 준비물에 속한다. 최근에 새롭게 가져가고 싶은 것이 생겼다. 바로 ‘나이트클럽 웨이터’다. 나는 원체 숫기가 없어 여자들에게 말을 걸 때 쑥스러움을 많이 탄다. 바로 이럴 때 자연스럽게 ‘부킹’을 도와줄 사람이 한명쯤 있었으면 하고 가끔씩 생각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갖고 여행할 수는 없다.

진정으로 자전거 여행에 필요한 것은, 자전거와 나뿐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3. 때로는 박쥐의 눈과 베토벤의 귀를 가져야 한다
박쥐는 거의 장님에 가까울 정도로 시력이 안 좋다. 만약 박쥐사회에 안경이란 것이 존재한다면, 그 안경알의 두깨는 여느 냉장고보다 두꺼울 것이다. 그 정도로 근시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에게는 근시안적인 태도가 가끔씩 필요하다. 자전거로 3500km를 달린다고 생각하는 것은 끔찍하다. 하지만 '목적지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겠지만, 오늘도 역시 60km를 달리는 거다'라는 생각은 그리 어렵지 않다. 앞서 1번 항목에서 말한 내용처럼, 자전거형 인간은 무식하기 때문에 자신이 같은 생각으로 60일간 달려 왔다는 것을 깨끗이 잊는다.

자전거형 인간은 비자전거형 인간의 조롱에 시달릴 때가 많다. 왜 그렇게 미친 짓을 하느냐라고 물었을 때, 그냥 못 들은척 무시해야 할때가 많다. 자신이 베토벤의 귀라도 가진냥 말이다.

4. 해에 대한 고흐의 열정


자전거형 인간은 ‘혹시 더 열심히 할 수도 있었냐’고 물었을 때, 대답을 망설여서는 안 된다.
고흐가 Starry Night나 해바라기를 그리면서 중간중간에 쨈바른 빵도 먹고 포도주도 홀짝이면서'더 열심히 그릴 것 그랬어. 붓터취도 더 강렬하게 하고, 원도 더 큼지막하게 하고 말이야'라는 말을 하는 것을 상상하기는 힘들다. 일단 일을 시작하면, 그의 눈에는 아무것도 들어 오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에 광기가 더해지면 더욱 더 무서워진다. 같이 아를의 노란집에 살던 고갱이 자신의 그림에 핀잔을 줬을 때 자신의 귀를 잘라 낼 정도로,자신의 일에 대한 후회를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고3때 수능을 백일 앞두고 삭발했다. 그리고 오른쪽에 내가 원하는 점수를 세겨 넣었다. 이것은 두가지 목적을 가진 것이었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그렇게 해야지만 나중에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난 최선을 다했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거울을 볼때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재수없다'라는 시선을 보낼 때, 더욱 더 긴장하게 됐다. 후에 ‘나도’라는 말을 집어 넣었다. ‘나 혼자만이 좋은 점수를 얻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물론 그렇다고 사람들이 곱게 봐준 것은 아니다. 왜 그랬는지, 후에 뒤통수에다 '창수'라는 이름을 집어 넣었다.

목표를 앞에 두고는 절대로 힘을 남겨 놓지 않는다. 여력이 남아 있다는 것은, 끝까지 해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한 셈이다. 일을 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뭐라고 말하느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일이 끝났을 때, 그들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 수 있는 자신감만 있다면.
자전거를 탈 때도 마찬가지다.


5. '동수'친구

혼자 자전거를 타다보면 심심하다. 그러면 세상의 모든 사물과 이야기 할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한다. 하늘의 별을 보더라도, 별 하나에 추억과 사랑과 쓸쓸함과 동경과 시와 어머니를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지나가는 '동수'와도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다보면 같이 여행을 가는 인형들이 얼마나 말이 많은지 알게 된다.
단, 사람들이 많은 데서 그러면 조금 곤란하다. 신기하게도 비자전거형 인간 중 '동수'가 보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내 친구 치키와 동수]


자전거 여행을 하는 사람은 신도 볼 수 있어야 한다.
밤 늦은 시간 하바나 뒷골목에서 강도를 만났을 때,
농장 한가운데 쥐가 득실대던 방에서갑작스럽게 정전이 되었을 때,
비가 쏟아지던 날 아무도 없는 숲속을 혼자 자전거로 하루 종일 달려야 할 때,
신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면, 여행을 중간에 포기했을 것이다.

내 뒤에 앉아 웃고 계신 신이 나를 지켜준다는 생각이 있어야 한다.
그 생각을 잊느다면, 아무데도 갈 수가 없었을 것이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자전거형 인간은,
I can 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I Do 라고 말한다.

'그정도는 나도 할 수 있어'라는 말로 할 수 있는 일은
세상에 아무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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