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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 교정 한가운데 있는 정자와 분수대입니다]
워싱턴에서의 짧은 유학생활은 miserable과 horrible을 왔다갔다 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온지 3개월이 지났네요. 계속해서 워싱턴에 관한 글을 쓰기 위해
여러번 끄적끄적 댔는데, 대부분 저도 모르게 이야기가 픽션화면서
누군가에게 잔인하게 해를 끼치는 결말로 끝나서 글을 실을 수가 없었네요.
아마 너무 가까운 곳에 부시대통령이 살고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얼마전 한국도 방문했었죠? 무사히 돌아간게 신기합니다)
미국에 오면 많은 것이 달라질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세계 어디에나 존재하는 보편적인 법칙은 분명 존재하나 봅니다.
미국으로 오기 전에 바랬던 일들 -얼굴도 좀 서구적으로 변하고,
친구도 생기고, 복권에 당첨되는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대충 제가 뭐하고 지내는지 말씀을 드리자면,
아침에는 토스트 구워 먹고, 숙제도 조금하고,
살짝 낮잠도 자면 지내고 있습니다. 집에서 쉬는데 지치게 되면
학교 가서 출석도 하고 합니다.
남는 시간에는 늘 그렇듯 책을 읽던가 일요일에는 교회에 가 복권에
당첨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가끔씩 하늘을 보며 '내가 정말 작가였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처럼 배고픈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리차알드 기어얼'(제 발음을 기준으로 표기했습니다)가 주연한
'뉴욕의 가을'아시나요? 그영화 재미있나요? 저는 못 봤습니다.
하지만 제가 소풍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은, 뉴욕의 가을이 어떻던 간에
워싱턴의 가을 역시 무지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3주전 버지니아 주에 있는 국립공원 Shenondouh에 가서 교회사람들과
단풍 놀이를 하며 찍은 사진들을 훑어 봤습니다.
얼룩덜룩한 자연이 높은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그 모습은
가슴 뭉클할 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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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아저씨가 열심히 가족사진을 찍는 장면이 보기 좋았습니다]
아쉽게도 제가 차가 없기 때문에 다시 Shenondouh 국립공원에는 가지 못 했습니다. 그래서 대역을 쓰기로 했습니다. 바로 제가 머물고 있는 MT Vernon 캠퍼스입니다.
사진기를 들고 무작정 밖으로 나갔습니다. 석양이 기가 막히게 예뻐
눈을 감고 찍어도 그림 같은 사진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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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밑에 다정해 보이는 커플이 보이시죠? 제가 아는 커플인데,
알고보니 싸우고 있는 것이더군요]
MT Vernon 캠퍼스에는 6개의 기숙사 건물과 매점 한 개,
그리고 아무도 안 읽을 것 같은 책들만 빽빽하게 모아 놓은
Eckles Library가 있습니다.
이 캠퍼스를 천천히 돌아 보는데는 5분 정도가 걸립니다.
건물들 외에는 캠퍼스가 온통 잔디와 나무들로 덮혀 있기 때문에
매우 비싼 사립 수용소에 들어 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거주자의 90%가 일학년이라 저 같은 복학생과는 놀아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복학생이 인간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도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반경 10분 이내에 상점이 하나도 없습니다.
캠퍼스안에 있는 매점에서는 생필품과 과자, 기름진 피자,
그리고 더 기름진 햄버거를 팝니다.
워싱턴 시내와 MT Vernon을 연결하는 것은
Vernon Express 라고 불리는 셔틀버스입니다.
이 셔틀버스는 지각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가장 좋은 친구입니다.
Vernon Express 사무소에서 공지한 시간에 정류장에 나가면
어김 없이 학교에 늦게 도착합니다.
물론 가끔 제시간에 출발하는 경우도 있기 합니다만,
그런 실수가 흔한 것은 아닙니다.
[지각대장들의 나이스 프랜드, Vern Express]
덕분에 MT Vernon에서는 도둑 걱정이 없습니다. 도둑이 물건을 훔쳐
도망가더라도, Vern Express를 기다리던 도중 모두
UPD(University Police Department)에게 붙잡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메인 캠퍼스와 상당히 떨어진 이 캠퍼스는
GWU의 기숙사와 여가용도로 쓰이고 있지만,
사실 이곳은 예전에 여자대학으로 쓰이던 곳입니다.
처음에 이 곳에 와서 이 소식을 듣고 많은 것을 기대했습니다.
저도 모르게 대학생활 말년의 로망을 떠올리게 되었죠.
아쉽게도 제가 약 30년 정도 늦게 이 곳에 도착하는 바람에
여자대학교 시절만큼 여학생이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한편으로는
30년 전 이 곳에서 백마탄 왕자를 기다리던 여학생들에게
대단한 미안한 마음입니다.
캠퍼스 입구를 들어서서 조금 가면 나오는 곳은 사커필드입니다.
MT Vernon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곳입니다.
가끔씩 이곳에서 GWU 라크로스 여성부 연습 & 경기가 있는데,
지나가는 사람을 서 있는 자리에 꽂아 세워 놓는 매력이 있습니다.
팔등신의 아가씨들이 잠자리채를 들고 서로 부딪치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을 보면 혈액순환도 빨라지고,
식욕도 왕성해지는 것 같습니다.
[여성부 라크로스 경기가 없는 텅빈 교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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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n Express의 랜덤한 서큘레이션과 텅빈 사커필드와는 상관 없이
하늘은 매우 높고 아름다웠습니다.
하늘 앞에 서 있는 시계탑 역시 제가 좋아 하는 곳입니다.
손목시계를 들여다 보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시간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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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는 식물을 키우는데, 제임스와 카일라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은 날 이름을 생각해 내서 예쁜 이름을 붙이지는 못 했습니다.
사진에서 오른쪽에 보이는 것이 제임스입니다.
이름을 바꿀까도 생각해 봤습니다만, 제가 아무리 상업작가라고는 해도,
작가가 자신의 기분에 따라 한 생명체의 이름을 마구 바꾸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고 판단해 그냥 뒀습니다.
[사이좋게 물을 나눠 마시는 제임스와 카일라]
식물을 키우는 것은 참으로 좋습니다. 동굴 같은 제 방 안에
저와 함께 숨쉬는 것이 있다는 사실이 기분을 좋게 만듭니다.
얼마 전 핸드폰을 사기 전까지는 제임스와 카일라가 유일한 대화상대였습니다.
방안에 있는 유선전화가 있긴 합니다만, 전화를 걸어 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고는 하는데,
전화를 받아 주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러면 다시 슬퍼져 식물에 물을 주고, 잠시 누웠다가 글을 씁니다.
가을을 타는 것은 저 뿐만이 아닙니다.
제가 방에서 기르는 제임스와 카일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제임스의 푸른 색이던 잎파리가 몇 장이 갈색으로 변했습니다.
몇몇 친구들이 제임스와 카일라에게 물을 줄 것을 요구했는데,
그것은 그들이 잘 모르고 하는 얘기입니다.
분명 제임스와 카일라 역시 주인을 닮아 가을을 타고 있는 겁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도 가을 때문에 고생하시는 분 계신가요?
걱정마세요. 곧 더욱 비참한 겨울이 다가 오고 있습니다.
괜히 '오늘을 즐기자,카르페 디엠'이란 말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곳 생활에 관련해 해 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습니다만,
다음 기회로 미뤄야 겠습니다. 이제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식사시간이거든요.
오늘은 짜파게티와 계란말이를 먹을 생각입니다.
모두 좋은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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